철학자의 일갈 "태극기·성조기 시위, 비웃고 넘길 일 아니다"
[제주 사름이 사는 법]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말하는 서부지법 폭동과 검찰 독재의 본질
- 사는이야기
- 황의봉(heb8610)
25.01.21 06:52ㅣ최종 업데이트 25.01.2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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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철학자’로 불리기도 한 김상봉 교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 재벌개혁과 학벌타파운동 등에 앞장섰으며, 민예총 문예 아카데미 교장, 민교협 공동의장, 5.18 기념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황의봉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긴박한 대치 끝에 체포됐고, 결국 구속 수감됐다. 또 한편에서는 윤석열 구속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내란을 비호하는 일부 정치인과 극우세력이 우리 사회를 끝없는 분열과 대립의 아수라장으로 몰고 가 파국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면 조기 대선이 치러져 새로운 민주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 못지않게, 최악의 사회 혼란이 장기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이럴 때일수록 표면에 돌출하는 현상과 함께 그 저변에 흐르는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듯하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거리의 철학자'로 불릴 만큼 시대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해 실천적 행동에 앞장서 온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꼽힌다. 민예총 문예 아카데미 교장,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5⸱18 기념재단 이사 등을 지냈고, 재벌개혁과 반 학벌 운동을 주도했다.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이마누엘 칸트의 '최후 유작'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리스도대학교와 전남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올해 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제주로 이주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나 철학자의 시선으로 현 시국을 진단하고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동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검찰 독재 세력, 놀랍게도 어떤 논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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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구속영장 실질심사중인 서울서부지법 앞 도로를 점거한 윤석열 지지자들. 김상봉 교수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극우세력의 행위는 한국현대사와 미국, 분단의 본질이 표출된 상징적 모습이라고 진단했다.황의봉
"한국의 이른바 보수 집단은 선을 위해 싸운 적이 없고, 내적인 성숙함도 없었고, 역사로부터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민주 진보 시민들과는 정반대였지요. 해방공간에서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집단이 보여줬던 행태와 내면의 풍경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말도 안 되는 폭동이 서부지법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이번 폭동 사태는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의 선동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들이 추종하고 놀아난 꼴입니다. 이 둘을 묶어주는 밧줄이 검찰 독재정권의 탈법적 권력의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 독재 세력이 조성해 온 치외법권적 탈법·무법상태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폭도들에게 똑같이 확산한 것이에요."
불법적인 비상계엄에서 서부지법 폭동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모든 국면에는 윤석열이라는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은 현직 대통령 최초의 체포와 구속이라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남겼다. 이를 지켜본 철학자의 소감은 어땠을까.
"늦었지만 다행이고 자업자득이었지요. 비상계엄 선포 이후부터 체포 구속되기까지 윤석열과 그 주변의 동조자와 추종자들이 보여준 일관적인 사악함이 놀랍고, 참담할 지경입니다. 과거 군부 독재정권은 비윤리적이었지만 나름대로는 논리를 갖추었습니다. 똑같은 악행이라도 제정신으로 치밀하게 저질렀는데, 놀랍게도 이 똑똑하고 잘났다는 검찰 독재세력은 어떤 논리도 없다는 것이에요. 윤석열과 그 대리인이 체포현장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주장하는 걸 보면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마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오직 욕망의 자기주장만 난무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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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현직 대통령이 판사가 발부한 영장에 의해 체포돼 수사기관으로 압송된 건 세계적으로도 초유의 일이다. 윤석열 체포와 구속, 그리고 이를 둘러싼 찬반 세력의 극단적 분열의 의미를 거시적 안목으로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저는 이런 모습이 수치스럽기는 하지만 우연히 한국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 시련은 인류역사의 보편적 모습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으로, 전 세계 인류가 겪고 있는 분단이라고 하는 모순과 대립이 남북분단의 현장인 이곳에서 폭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악과 고통 그리고 이에 맞선 숭고한 선이 최대의 질량과 에너지로 한반도에서 충돌한 것입니다.
한남동에서, 광화문에서, 법원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시위를 하는 극우집단의 행위를 비웃고 넘길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분단의 본질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에요. 미국과 그에 대립하는 세력과의 충돌이 이 땅에서 재현된 것으로, 한국의 현대사가 미국이라는 인류의 지배권력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극우세력의 무지몽매해 보이는 현상의 뿌리에는 분단 현실이라는 본질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결국은 우리가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을 봅니다. 이 가시밭길을 우리만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이 지배해온 수천 년에 걸친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희생자인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겨낼 것이고, 이는 모든 인류에게 희망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윤석열이 체포, 구속됨으로써 내란이 초래한 위기는 한고비를 넘은 것 같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일까. 12.3 쿠데타가 발생한 배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현대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관과 이에 저항해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관이 부딪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힘 또는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관이 주류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지요. 최근에 와서 넓은 의미의 진보진영이 길을 잃었다고나 할까, 좀 정체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반동적인 움직임이 있어 왔다고 봅니다. 그게 윤석열 검찰독재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죠.
과거엔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형태가 군부독재로 나타났다고 하면, 이것이 일단 극복된 후 다시 이어받은 게 검찰권력 또는 넓은 의미에서 법조권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력이 윤석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절대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조국 이재명 등 정적 죽이기를 해왔습니다만, 총선에서 패배하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친위 쿠데타라는 무리수를 썼던 거라고 봅니다."
12.3 쿠데타는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보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거나 블랙 요원을 동원해 소요사태를 계획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반면에 평일 밤에 계엄을 발동해 국회 점령에 실패하는 허술함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두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윤석열과 그 일당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치밀하게 계엄을 준비했지만, 그들이 직접 총을 들고 설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동원된 사람들이 군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시민이었던 겁니다.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 발전을 이룩했는데, 가장 중요한 게 정신의 발전이었어요.
이렇게 역사가 변화하고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내면적으로 성숙해 온 사람들이 바로 시민인데 비해 그 발전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켜 서 있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지배계급입니다. 이 시민사회와 지배계급 사이의 괴리와 불일치가 이번 비상계엄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라고 봅니다."
7080세대의 퇴장... 이제 20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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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윤석열 구속’과 '국민의힘 해체'를 외치며 안국동∼종로2가∼명동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황의봉
비상계엄을 저지하고 윤석열 탄핵과 체포를 외친 집회 장면에 많은 국민이 감동하고 있다. 국회로 달려와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 탄핵안 국회 가결 현장에 등장한 2030의 '응원봉 시위', 그리고 농민과 젊은 여성들이 합세한 '남태령 대첩', 강추위를 무릅쓰고 밤을 지새운 '한남동 키세스'. 이런 광경이 철학자의 눈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7080세대의 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역사는 70년대와 80년대에 20대였던 사람들이 만들어온 역사였어요. 동학 때 김구가 약관 스무 살이었고, 청계천의 노동자 전태일은 22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던 사람들 또는 그 세대들은 모두 20대였거든요. 4.19도 마찬가지였고, 최근의 역사에서도 70년대와 80년대 당시 20대였던 사람들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주역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그들이 싸워서 만들어놓은 건데 그것이 이제 어떤 한계에 이르렀고 심각한 반동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20대 여성들이 등장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 세대가 형성해온 역사를 이어받고 또 극복해나가는 새로운 세대가 나왔다는 점에서 대단히 감격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 20대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개인주의적인데, 저는 이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굉장히 주체적인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인주의적이고 주체적인 세대는 고립되어 각자도생으로 나갈 수도 있어서 자칫 사회 붕괴를 촉진할 위험성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계엄 사태는 역설적으로 각자도생하던 세대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그들로 하여금 사회 또는 국가라고 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일깨워줬고, 서로 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결핍돼 있던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새로운 정치문화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윤석열은 물론, 그를 비호하는 국민의힘과 극우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이른바 87년 체제로 만들어온 절차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무시했고, 여당 국회의원이 극우세력의 태극기 집회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이다. 백골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극우 유튜브의 선동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이들의 정신세계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성경의 출애굽기나 탈출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길어도 보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40년이나 광야에서 방랑하게 되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집트에서 노예로 태어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생각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 하나를 달성하는 게 왜 이리도 힘들까, 자문할 때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회상하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출애굽기를 한국의 극우 또는 보수세력에 투사하게 되면 이들은 내면에 노예의 낙인이 찍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낙인은 지워지지 않고, 결국은 새로운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죠. 이는 냉혹한 역사의 철칙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은 자유인의 나라에 끝내 못 들어가는 겁니다. 자신의 근원적인 내면에 노예 상태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자유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광야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들뿐입니다.
노예 시절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이 불충분하고 불만족스러우면 노예로 살던 때가 더 좋았다고 떠들기 시작하는 거죠. 예를 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들이 그들의 영혼 속에 노예의 낙인으로 찍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2030 세대는 2000년대, 길게 잡아도 87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이들이야말로 태어나서 한 번도 노예라는 인식이 없었던 세대입니다. 이런 세대들에게 계엄령이라는 게 나오니 그토록 강력하게 저항하는 겁니다. 과거 계엄령하에서 살았던 저희 세대는 20대만큼 놀라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옛날에 봤던 미친놈들을 또 보네, 하는 감정이었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20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게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의 문제라기보다는 세대의 문제라고 보는 편입니다. 아무튼 극우라고 하든 보수라고 하든 이 사람들은 자기의 기억 속에 노예의 낙인을 지워버릴 수 없는 사람들인 까닭에 그 시효가 다할 때까지 우리 사회에 많은 물의를 빚기는 하겠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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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24년 10월 1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필리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라오스 아세안 +3 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과 김건희라는 두 인물이 보여준 기이한 언행에 많은 사람이 놀라고 있다. 무속과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현실과 동떨어진 의식 세계에서 사는 듯하다. 정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거짓말에 익숙하며 사과할 줄 모르고, 공감 능력도 현저히 결여된 모습이다. 철학자의 눈에 비친 이들은 어떤 유형의 인간형일까.
"윤석열과 김건희를 언급할 때마다 무속과 관련한 비난이 따르고 있습니다만, 사실 무속은 죄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무속 또는 샤머니즘은 넓은 의미에서 해원과 위로의 문화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땅의 약자들을 위한 오래된 심리상담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속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다고 하는 걸 깨달으면서 어른이 되고 철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나라에는 철이 안 든 어른들이 너무 많아요. 전광훈이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얘기하잖아요. 참 엽기적인데, 이 우주가 자기를 위해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욕망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욕망을 위해 동원되고 악용되는 게 바로 무속인 셈입니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끊임없이 이 점집, 저 점집을 찾아다니며 내가 이번에 출세하겠냐, 말겠냐 하며 무속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 많다는 것이죠.
윤석열이라는 인간상은 앞에서 말씀드린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관을 가진 전형적인 사람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관을 가진 분이 바로 전태일입니다. 전태일이라는 인간상은 외적으로 가장 비천한 자리에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극단의 고귀함을 보여준다면, 정반대로 외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가장 비천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인간상이 윤석열 김건희입니다. 이 두 인간형이 서로 투쟁하면서 만들어온 역사가 한국의 근현대사라고 봅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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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024년 12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내란으로 시작된 탄핵정국은 헌재에 의해 윤석열 파면이 확정되면 즉시 조기 대선 국면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유력시되는 이재명 대표가 이른바 사법리스크라는 장애물을 넘고 출마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집권하면 한국 사회를 다시 정상화하고 민주적인 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진보정당 운동에도 참여했던 김상봉 교수의 정국 전망을 들어보자.
"일단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중요한 변수일 것 같아요. 그가 사법리스크를 극복하고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민주화 이후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이재명은 7080세대에 속하지만, 그 세대의 다소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운동권 문화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노동문제에도 좀 더 전향적일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한계를 많이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반면에 사법리스크로 인해 출마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면 한국 사회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입니다. 검찰독재, 좀 넓혀 말하면 사법독재의 문제가 우리나라의 민주적 정치문화의 발목을 치명적으로 잡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검찰수사권을 박탈하고 기소청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사법부 전체에 대한 전면적 수술이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법관 개인이 유무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에게 주어진 이 절대권력 역시 어떤 식으로든 해체되어야 합니다."
박근혜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 가시화하면서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성찰도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박근혜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윤석열 탄핵으로 등장할 정권이 명심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일단 '형성'을 해야 합니다. 지금 윤석열의 내란을 응징하는 정치적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잖아요. 이걸 긍정적인 형성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탄핵의 에너지가 문재인 정부로 향했던 것처럼 윤석열 탄핵의 에너지가 다음 정권에게로 향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다음에 들어설 정부가 앞으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하자고 끊임없이 의제를 제시해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형성은 화해와는 다릅니다. 단죄할 사람은 철저히 단죄해야 합니다. 이번이 단죄할 기회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모두 방식은 달라도 반란 세력입니다. 이승만도 제헌의회를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헌법질서를 왜곡시킨 사람이고, 그 뒤에 본격적으로 군부가 등장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 세력을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 들어 대놓고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이승만 동상도 세우는 짓을 하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단죄를 한 바탕 위에서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이냐,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냐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가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모두에 의한 나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두를 위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상봉 교수는 경제민주화야말로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더 나아가 모두가 함께 잘사는 '공화국'의 형성에 중요한 관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평소 경제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것이 공화국의 요체라고 강조해 온 김 교수에게 그 구체적 방안을 물었다.
"일단은 지금 있는 법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의 계열사가 이건희 때 82개나 됐지만 이건희씨가 그 어떤 계열사에도 등기임원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 지배했잖아요. 법적 책임의 바깥에서 권한을 행사한 것이죠. 이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는 법을 지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다음은 법을 지키는 바탕 위에서 노동자의 참여 또는 의사결정의 권한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치명적 위험에 노출될 때 현장 노동자의 재량으로 멈출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안 되면 노동자는 임금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통상임금은 사실 많은 경우에 최저임금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출산율 세계 꼴찌를 피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의사결정의 권한은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상으로는 분배에 있어 노동자의 몫이 더 커져야 합니다. 형식과 내용에서 경제의 공공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는 또다시 진정한 공화국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몰이해와 저항이 있는 만큼 원론적인 것과 함께 현실적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원론적으로 보자면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1년에 한 달이라도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한다면 인간에 대한 자본의 전면적인 지배가 12분의 1은 약화하는 겁니다. 자본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보편적 의미에서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정신입니다.
기본소득을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측면에서는 이것을 투자라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경우 기본소득을 먼저 적용할 영역이 정신노동 분야입니다. 요즘은 문화산업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로 인한 부가가치가 실은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런데 한 사람의 한강 작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 수준에 비추어 순수한 학문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법대 나온 권력자들의 무지성은 '학벌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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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4일 한라도서관·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공동 주관으로 열린 특별초청 인문강좌 ‘영성 없는 진보’에서 강연하는 김상봉 교수.황의봉
김 교수는 1년 전 <영성 없는 진보>라는 책을 통해 한국 정치의 파행과 민주주의 위기 원인을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영성은 나와 전체가 근원에서 하나라는 믿음이라고 하면서 특히 동학농민혁명 이래 군사정권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이 이 나라 진보적 정치활동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영성이 사라지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들어보자.
"전태일 같은 청년이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려 했을 때 그가 기댈 수 있었던 것은 객관적 법칙이나 이론이 아니고 믿음인 것이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나의 생명을 역사의 제단에 바치더라도 내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우리에게는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영성인데, 민주화 이후에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온전하지는 않아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믿음을 의탁할 수 있는 종교적인 신념체계가 우리 사회 내에서 객관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나 1980∼90년대 이후에 해체돼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종교적인 토대가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것인데, 특히 개신교가 그렇습니다. 광주가 5.18의 도시잖아요. 제가 근무한 전남대 길 건너에 신천지 본부인가가 있습니다. 광주의 신천지 조직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저는 5.18의 윤리성을 떠받쳤던 토대의 하나가 기독교적인 네트워크라고 믿는데, 미약하나마 어떤 윤리적인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개신교가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어요.
영성이 사라진 배경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면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의 믿음이 병들었다는 겁니다. 한국인들의 내면이 언제부터인가 너무 황폐해버린 것이고, 이 세계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니 결국은 당파성만 남게 된 것이지요.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나타난 것이에요."
김상봉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진보 운동의 영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정말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 최근 이른바 남태령 집회에서 2030 세대가 농민을 지원하기 위해 영하의 추위를 무릅쓰고 한밤중 달려오고 '선결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을 보면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진보 운동의 영성이 되살아난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되살아났다기보다는 늘 있었던 것이지요. 세월호 때나 이태원 참사 때 한국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고 연대하는 것에서 보았듯이 영성이 죽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실종됐던 겁니다. 제가 책에서 영성을,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굳건한 믿음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이때 굳건한 믿음이라는 건 자각되어 있는 것으로 대자적인 거예요. 누가 물어본다면 나와 세계가 하나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무의식 속에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 막연한 감정으로만 있는 영성은 즉자적인 것입니다. 이런 영성은 한국인들에게 꺼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금 모으기 운동이나 태안반도 유조선 사고가 났을 때 수많은 사람이 달려간 것이 모두 영성의 발로입니다. 우리가 위기 상황마다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우리 내면의 영성이 즉자적으로나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성 없는 진보라고 좀 과격한 표현을 썼던 까닭은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분명하게 자각되어 있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성이 조리 있는 신념체계로 마음속에 굳어져 있으면 일상의 삶을 이끌어가는 어떤 척도나 지표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위기 상황에만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위기 상황이 해소되고 나면 다시 일상의 노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지속성을 가질 수 없는 겁니다. 이번 탄핵정국에서 표출되었던 감동적인 모습들이 즉자적인 영성이 아니라 대자적인 영성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겠지요."
김 교수는 '학벌사회'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기도 했다.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며 서울대 법대 출신을 비롯한 이 나라의 권력 엘리트 층이 보여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처신과, 무지성 비상식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최고 학벌의 엘리트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학벌 타파에 앞장서 온 김 교수의 진단을 들어보자.
"학벌이란 게 집단적인 주체이기는 한데 영혼이 없는 주체예요. 욕망만 있을 뿐이지 어떤 지성이나 이성 혹은 영혼이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학교를 나왔다, 어떤 학벌에 속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편적 가치의 구현일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특정 학교 나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어떤 집단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건 욕망밖에 없는 것이지요. 학벌을 매개로 해서 서로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어떤 보편적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벌이라는 것은 반사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학벌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면서 발전해 온 역사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것이 우리 사회의 내적인 암이 돼버린 것입니다. 서울대만 가봐라, 이 세상이 전부 네 거야, 하며 아이들이 철들기 전부터 이런 욕망을 부추기면서 키워왔으니 근본에서부터 우리의 의식이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학벌의 욕망이 어떤 사회악보다도 타파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게 모든 사람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서울법대 나온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무지성 비상식도 학벌의 폐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그들이 지성을 가졌을 것으로 기대했던 까닭은 시험을 잘 쳐서 그 대학을 가고 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인데, 출세하기 위해 시험 쳐서 쌓은 공부는 순식간에 다 잊어버립니다. 그런 지식은 원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남는 지식은 자기의 삶 속에서 얻는 보편적인 지식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처럼 허구한 날 폭탄주 마시는 사람의 머릿속에 뭐가 남아 있겠어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공부라는 걸 너무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교 1등 하면 머릿속에 든 것이 많고 교양도 풍부하고 식견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바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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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지난 2024년 12월 21일 오후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권우성
김상봉 교수는 2012년 9월부터 연구년을 맞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1년간 거주한 바 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제주를 찾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제주시 한림읍의 한 마을로 완전 이주를 해서 살고 있는 철학자의 눈에 비친 제주도는 어떤 곳일까. 그리고 그가 정년 이후의 삶을 제주에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는 한마디로 한반도의 거울, 특히 비극적인 역사의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가 지정학적으로 가장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한반도 역사의 모든 비극적인 모순이 여기에 가장 크게 증폭돼 투영된 것이지요. 그래서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 앞에 마주 선다는 건 바로 한반도를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거라고 여겨집니다. 한편으로는 이 비극적인 역사라는 게 깊은 어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반전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제주도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디딤돌이라고도 믿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제주라는 섬은 학문적으로 집중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바다로 격리되어 있으니까 이런저런 일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현장에서 4.3 연구를 하기 위해 제주에 왔습니다. 제가 4.3에 대해 지난 70주년 때 발표한 글이 있습니다만, 그 이후에 계속 이어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거든요. 그걸 반드시 이어서 4.3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명해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에서 살아야죠. 책만 보고 역사와 만날 수는 없으니까요."
광주에 살면서 5.18을 연구하고 글을 써온 김상봉 교수가 제주로 옮겨와 4.3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갖춘 연구 결과를 내준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제주 4.3연구의 향후 과제와 관련해 김 교수의 문제의식의 일단을 들어보았다.
"4.3이라고 하는 사건은 미증유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무장대의 관점과 토벌대의 관점이 접점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비극을 양쪽 모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쌍방의 과오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다음에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4.3이 상징하는 우리의 내적인 분열이 극복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4.3에 관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선 자리에서 회개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 부분에 동료 학자들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4.3 추념일에 서북청년단이라는 사람들이 4.3평화공원에서 시위를 벌이고, 4.3에 대한 왜곡 폄훼 발언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4.3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스스로의 잘못은 반성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은 채 자기의 트라우마만 기억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그들 의식 속에는 자신들이 너무나 정당한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김상봉 교수는 평소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되새겨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퇴출 이후 우리 사회를 다시 바로 세우는데 주역이 될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함 선생의 가르침을 한 대목 부탁했다.
"함석헌 선생은 씨알 혁명이란 표현을 자주 쓰셨거든요. 흔히 혁명이라면 외적인 어떤 체제의 전복을 먼저 떠올리잖습니까. 그런데 함 선생은 일관되게 체제의 전복은 내면 혁명의 반영 또는 결과라고 봤어요. 쉽게 말하면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이 근본에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함 선생은 씨알 혁명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저에게는 함석헌 선생의 사상이 늘 하나의 깃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함 선생의 가르침을 재해석한다면 저는 '네가 나라다'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는 '이게 나라냐'고 묻고 있잖아요. 그럴 때 함 선생은 '네가 바로 나라다'라고 깨우쳐주고 있는 겁니다. 네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남한테서 찾지 말라는 겁니다. 이 세상의 진리와 정의와 선이 네 속에 있는 것이지,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것으로 젊은 세대에게 주고 싶은 말입니다."
제주 사름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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