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내일 가족 보러 간댔는데…” 22살의 꿈, 컨베이어벨트에 끼였다

“내일 가족 보러 간댔는데…” 22살의 꿈, 컨베이어벨트에 끼였다

우즈베키스탄서 한국어 공부해
재작년 유학 와 틈틈이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 끼여 숨진 채 발견

 
 
설 연휴 첫날이던 지난 25일 아침 8시44분께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ㅇ업체 공장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청년 ㄹ씨가 석재 등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강원소방본부 제공.

“내일(27일) 비행기 타고 가족 보러 간다고 했는데… 한국 온 뒤 첫 귀국길이라 설레어 했는데….”

설 연휴 첫날, 귀성으로 들떠 있을 무렵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스물두살 청년이 굉음과 먼지가 뒤섞인 석재 공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누구도 그의 죽음을 살피지 못했다.

지난 25일 아침 8시44분께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모래·돌·자갈 등 토목용 골재·석재 등을 생산하는 ㅇ업체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 청년 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ㄹ씨는 생산된 석재 등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아래 바퀴 부분에 온몸이 끼여 있었고,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완전히 부서질 정도였다. 컨베이어벨트는 바퀴 지름 30㎝, 간격은 70~80㎝ 안팎인데 몸 전체가 완전히 끼여 있어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 등이 손쓸 겨를도 없었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강원소방본부 쪽은 “다리 부분만 드러나고 온몸이 컨베이어벨트 아래 바퀴 부분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출혈이 심했고, 두부(머리 부분) 손상에 의한 심정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광고

ㄹ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했고, 2023년 9월 말 입국해 강원도의 한 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주말과 휴일 등 수업이 없을 때 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해왔다. 이 공장엔 다른 외국인 노동자도 있었고, 틈틈이 공장에서 숙식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ㄹ씨는 다른 작업자 등과 떨어진 별도 컨베이어벨트에서 혼자 일했다. 공장은 채석과 쇄석을 통해 모래·자갈 등 골재를 생산하는데, 워낙 넓어 작업 공간이 뜨문뜨문 떨어져 있다. 주변엔 관리자, 안전시설 등이 없었다. 박근호 원주경찰서 형사과장은 “ㄹ씨가 평소 컨베이어벨트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한 점으로 미뤄 이 작업이 사고 원인, 경위 등과 관련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며 “사고 장면을 직접 목격한 동료가 없어 사실관계 파악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공장에 폐회로텔레비전이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ㄹ씨 사고 현장의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광고
광고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산업재해로 보고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해당 사업장 규모는 30여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은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당시에도 컨베이어벨트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컨베이어벨트 점검 시 안전 수칙, 작업장 주변 안전 조처, 안전 매뉴얼, 안전 관리자 유무 등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볼 방침이다.

국내 우즈베키스탄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마샤(35)씨는 26일 “ㄹ씨 친구 등의 말에 따르면 ㄹ씨는 설 연휴를 맞아 한국에 온 지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려 했는데 정말 안타깝다”며 “ㄹ씨 부모에겐 차마 알리지 못하고, 다른 가족과 접촉해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고

ㄹ씨는 유학비자(D-2)로 입국한 뒤 구직비자(D-10)를 취득해 불법 체류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취업과 노동, 신분 등 공식적인 것은 법무부, 우즈베키스탄대사관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데 연휴여서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오윤주 이준희 최예린 김해정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