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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곰곰이-되새겨 보아야 할...

초파리의 짧고 가혹한 생

 

 

 

 

 

“아프니까 초파리다” 초파리의 짧고 가혹한 생

초파리의 3분의 1은 부상을 입은 채로 살아… 매일 쫓기고 맞고 삼켜지는 위험에 놓여져

여름철 불청객 초파리. 기온이 오르고 장마철이 되면서 초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파리는 높은 온도와 습도를 좋아하고, 후각이 뛰어나 음식물이 있는 곳에 주로 나타난다. 대부분 비위생적인 환경에 알을 낳고 서식하기 때문에 예방과 퇴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들의 침입을 진압하기가 쉽지는 않다. 번식력이 좋아 개체 수가 많고 작은 틈새도 쉽게 통과하니 충해전술(蟲海戰術)이 따로 없다. 곳곳에 트랩을 만들어 놓고, 흡입식‧감전식 퇴치기를 휘두르거나 손뼉을 쳐서 잡으려고 해도 빠져나가 근처를 맴돈다.

사실 초파리에게 이 모든 환경은 매우 위협적이다. 10~15일 정도 사는 동안 사람과 천적에 매일 쫓겨 다니며 맞거나 삼켜질 위험에 놓여있다. 때문에 이들의 3분의 1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다치거나 부상을 입고 산다. 최근 왕립학회(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보고된 논문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던 초파리의 상처와 그들의 짧은 생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정량화한 결과가 담겨 있다.

사람에게는 성가시지만 생태계의 일원인 초파리의 생을 ‘전지적 초파리 시점’으로 살펴보자.

초파리의 3분의 1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다치거나 부상을 입고 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wikipedia

 

상처 많은 야생의 곤충들

곤충은 다양한 환경조건과 식량원에 대해 성공적으로 적응한 종이다. 따라서 그들의 면역체계에는 단일 개체군의 생태적 특성은 물론 개체 사이의 공생적‧경쟁적 상호작용에 대한 무수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

베를린자유대학교 생물학연구소와 막스플랑크연구소 곤충공생학과 연구진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곤충의 면역체계 진화와 그 시작점인 상처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외부환경으로부터 얻은 상처가 병원균이 진입하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상처는 잠재적으로 포식자-피식자 역학, 개체군 역학 및 경쟁적 상호작용에 대한 생태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처를 입은, 특히 표피가 파손된 곤충은 병원균에 쉽게 감염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무균이 아닌 환경에서 상처 입은 개미의 24시간 내 사망률은 80%였지만, 무균 환경에서는 10%에 불과했다. 야생생물들은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어 상처 입는 일이 흔하다. 상처의 원인은 다양한데,  특히 기생성 진드기는 숙주의 표피를 뚫고 바이러스를 옮기는 질병 매개체다. 초파리에 붙은 진드기는 주로 암컷을 통해 유전되는 내공생체(Spiroplasma poulsonii)를 수컷에게 전염시켜 죽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야생생물의 상처에 대한 연구가 다수 보고됐는데, 주로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 포유류‧조류‧갑각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거나 특정 지역 내의 실태조사 정도다. 하지만 연구진은 상처의 잠재적 영향을 추정하려면 상처 발생에 대한 체계적, 정량적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파리에게 개입되는 스트레스. ⓒmdpi.com

 

초파리의 약 31%는 한 개 이상의 상처 있어

이를 확인하고자 연구팀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동물(곤충 포함) 중 하나인 초파리” 1만 마리 이상을 채집하고 부상 여부를 검사했다. 다양한 초파리 종이 채집됐으나 연구진은 최종 대상으로 노랑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한정했으며, 그 결과 최종 대상이 된 초파리 1,246마리였다.

이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개체 하나하나 모두 상처를 확인한 후에 진단용 PCR을 이용해 암수를 구별하고, 모든 개체에게서 진드기 존재 여부를 검사했다. 개체별 상처 확인은 신체 일부 부위가 없어졌거나, 상처 부위에 나타난 면역반응으로 구별했다.

곤충은 면역체계가 잘 발달해 있다. 따라서 내부기생충이나 병원체에 대해서는 캡슐화 반응을 나타내고, 박테리아나 단세포 침입은 식균작용을 보인다. 연구진은 곤충의 이러한 특징에 근거하여 표피 부분에서 갈색이나 검은색의 멜라닌 반응을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그 결과 약 31%는 표피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상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처 부위는 머리(더듬이), 흉부, 복부, 다리, 날개 등인데, 이중 한 곳에만 상처가 난 초파리는 1,174마리고 나머지는 두 개 이상의 상처가 있었다.

초파리의 상처 유형. 화살표는 면역반응이나 신체의 결손으로 인해 발생한 멜라닌화 부위. ⓒRoyal Society Open Science

 

초파리의 상처 많은 생애

연구팀은 가장 흔히 부상을 입는 신체 부위는 복부라고 말했다. 특히 암컷이 수컷에 비해 복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4배 정도 높았는데, 복부뿐만 아니라 머리‧다리‧흉부에 걸친 복합 손상도 암컷이 더 높았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길기 때문에 상처 입은 개체가 더 많이 발견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또한 다중비교 결과에 따르면 초여름 초파리는 늦여름에 비해 유의미한 정도로 흉복부손상이 덜 나타나 계절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등에 가까운 복부손상에 대한 유의미한 영향은 없어 계절 요인으로 일반화하기를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미상처에 대한 검사도 진행했다. 연구진은 암컷에게서 발견된 복부 손상이 교미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 조사했는데, 교미상처 검사를 받은 178마리 중 약 52%가 교미상처 유형의 상처를 보였다. 하지만 복부손상과 교미상처의 상관관계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피 아미티지(Sophie A. O. Armitage) 베를린자유대학교 교수는 “수컷은 암컷의 내부를 여는 뾰족한 돌기가 있다.”면서 이 무시무시한 구애 의식이 암컷의 복부 부상 빈도를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날개 손상을 입은 초파리는 338마리에 해당됐다. 손상은 정맥이 없는 날개 부분에서 더 많이 나타났는데, 이 또한 다중비교 결과 날개 손상 비율이 늦여름에 비해 가을에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초파리의 상처 부위 및 빈도. (a)는 상처 위치가 없거나, 상처가 1개 또는 2개 이상인 비율을 나타내고 나머지는 모두 초파리(짙게 채색)의 상처 부위. ⓒRoyal Society Open Science

이외에도 연구진은 초파리들도 사람처럼 일상생활 중 장애물에 부딪쳐 상처를 입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수컷들 간의 싸움, 초파리에 기생하는 진드기도 상처의 원인으로 나타났다. 채집된 초파리 7종 중 1% 미만이 진드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숙주에게 상처를 입혔다. 연구진은 진드기 발견 비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초파리 사망설’을 설명했다. 생애 주기가 짧은 초파리가 진드기에 의해 병원균에 감염되면 채집 이전이나 채집 직후에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생태학 연구소 그레이브(Veit Grabe) 박사와 아미티지 교수는 “많은 초파리가 부상을 입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이들의 면역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부상이 생태학적,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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